홍범도 장군에 대해 꼬꼬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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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에 대해 꼬꼬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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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님은 1868년 평안남도 평양부 서문내 에 위치한 양반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평안남도 양덕군, 평안북도 자성 군이라는 설도 있다. 어머니께서는 출산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하였다. 여러 일들에 치이면서 을미의병 전까지 사냥꾼 생활을 했다.

 

그는 총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1895년에 을미의병 발생 직후 의병을 일으켰는데 일제의 총포기화류를 단속법을 발령했기 때문.

일본의 만행들을 보고

그후 왜놈을 사냥하겠다고 생각했다.

그후 여러 일본군들을 사살하기도 했다.

일본에 병합 이후 의병 항쟁이 힘들다고 생각해 연해주로 망명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다.

1920년 6월  봉오동 일대에서 

무장 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한 대한 북로 군 독부 예하 북록 제1군 사령 부장으로 선출되어

일제와 봉오동 전투를 했다.

그 후 일제 추격대를 격퇴 후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 대첩에 합류했다.

 

그 이후 연해주 남부 한인 콜호즈를 비롯한 지역 사회 지도자가 되었고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 입당했고 연해주 고려인 지도자로 활동했으나 

스탈린에 의하여 소련 영토 카자흐스탄 SSR로 강제 이주했다.

이후 고려극장에서 고려인 희곡 작가 태장춘의 배려로 수위장을 맡아 연금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 후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가...

1943년 10월 25일

자국이 독립하기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 우리나라 정부는 1962년 10월 25일 현재의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했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김영삼 대통령이 유해 송화를 추진했지만 

남북 외교전이 한참일 때라 북한으로 송환하겠다고 했지만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가 나서서 이를 거부했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을 계기로 유해 송환을 추진했다.

2020년 전까지 고국에 돌아와야 한다고 토카 례프 대통령에게 전했고

2021년 8월 14일 카자흐스탄에 군 수송기가 진입했고

광복 76주년 광복절 늦은 밤 마침내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에 19시 25분경 서울 공항에 착륙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1년 8월 18일 국립 대전현충원 독립 유공자 3 묘역에 안장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꼬꼬무에서 재밌게 아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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